개발자가 바라본 Casio 계산기 60주년
Masayuki Hagata는 Casio의 첫 번째 전자계산기 001이 판매되고 불과 2년 후인 1967년 Casio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1972년 출시 후 단 10개월 만에 100만 대 판매를 기록한 획기적인 계산기 Casio Mini의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Hagata 씨와 함께 지난 60년 동안 계산기 산업에서 Casio의 역사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Hagata 씨는 Casio 재직 기간 동안 많은 계산기 모델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울트라 계산기(Ultra Calculator)"라는 콘셉트에서 탄생한 Casio Mini에 관한 이야기부터,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끊임없는 관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신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없습니다.
인터뷰어: 지금도 활발하게 개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런 일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Hagata: 1966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전기 공학 학위를 받기 위해 수강할 과목을 선택해야 했죠. 당시 대학에서 전산 관련 강의를 개설했는데, 그때 컴퓨터는 정말 거대했어요. 일본에서 컴퓨터를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저는 컴퓨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전산 강의에 흥미가 생겨서 선택했습니다.
인터뷰어: 그리고 Casio에 합류하신 게 맞나요?
Hagata: 맞습니다. 저는 1967년 Casio에 입사했어요. 그때는 Casio의 첫 번째 데스크톱 계산기인 001(1965년 출시)이 이미 출시된 이후였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당시 Casio는 이미 전자계산기를 개발한 상태였고, Toshio Kashio가 발명했던 이전의 릴레이 계산기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있었죠. (Toshio Kashio는 발명가이자 Casio를 설립한 4형제 중 둘째입니다. 릴레이 계산기는 전자석을 통해 켜고 끄는 계전기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기존 릴레이 계산기 고객에게 계속 유지 보수를 제공해야 했어요. 저는 관련 강의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릴레이 계산기를 직접 보았죠. 놀라웠어요! 한 사람이 알고리즘을 생각해 내고 계전기를 사용하여 계산기를 만든 겁니다. 그 알고리즘은 주판처럼 2진법과 5진법 계산을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입사한 즉시 개발 업무를 맡았습니다. 약 1년 동안 120 모델 담당 엔지니어를 도왔어요. 이후 제가 개발을 맡은 첫 모델은 152(1968년 출시)였습니다.
120은 그때까지 사용된 트랜지스터 대신 집적 회로를 사용하는 최초의 계산기였습니다. 카탈로그에는 이를 "우주 시대를 위한 IC 주판"이라고 소개하기도 했죠!
주판은 과거에 일본인이 유일하게 사용하던 계산 도구였습니다.
120 (1968)
152 (1968)
Hagata: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많았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 볼 기회는 없었어요. 그래서 Casio 입사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직접 신제품을 설계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험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죠.
Hagata: 전산 장치를 개발하게 되면 컴퓨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나중에 계산기의 두뇌와 같은 역할을 하는 LSI 기술이 개발되어 수많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는 알고리즘을 통해 무엇이 가능한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AS-A는 제가 LSI용으로 개발한 회로를 사용한 첫 번째 모델이었어요. 길쭉한 형태의 디자인이 주판을 떠올리게 했고, 실제로 Toshio Kashio가 붙인 모델명 "AS" 역시 주판이라는 뜻의 "abacus"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죠. 그 이후에는 그 가로형 디자인에서 출발한 혁신적인 제품들을 계속해서 만든 것 같아요.
AS-A(1969)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는 생각에서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Casio Mini)
인터뷰어: 1972년 출시된 Casio Mini에 대해 알려주세요. Casio Mini의 회로와 알고리즘을 설계하셨는데 어떻게 개발을 시작하게 됐나요?
Casio Mini: 1972년에 출시된 Casio Mini는 휴대하기 쉬운 슬림하고 가벼운 본체가 특징입니다. 소비자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두고 개발한 이 모델은 12,800엔의 가격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당시 일반적인 계산기 비용의 3분의 1에 불과한 획기적인 가격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단 10개월 만에 100만 대를 판매했고, 누적 판매량 1,000만 대를 달성했습니다. Casio Mini는 Casio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서 계산기와 함께 인식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때 기업용으로만 판매되던 계산기 시장에서, Casio Mini는 계산기가 일반 가정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Casio Mini가 이러한 대중화를 이끌면서 LSI 기술 역시 대량으로 필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계산기와 LSI 기술은 서로 나란히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Casio Mini(1972)
Hagata: 당시에는 저렴한 계산기조차 약 38,000엔이었습니다. 10,000엔짜리 계산기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상사는 칠판에 "울트라 계산기(Ultra Calculator)"라고 적었습니다.
당시 저는 공학용 계산기 개발을 시작한 상태였는데, 10,000엔짜리 "울트라 계산기"(1972년에 출시된 Casio의 공학용 계산기 fx-1) 개발을 맡게 되면서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당시에는 계산기에 여러 개의 LSI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만, LSI 수를 하나로 줄이고 4자리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면 10,000엔 가격대를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천 단위까지만 계산할 수 있어 실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최소한 100만 엔 정도까지는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서, 마침내 6자리 디스플레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6자리 디스플레이 자체는 괜찮았지만, 곱셈을 사용하면 금세 자릿수를 넘어가 버리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자릿수 확장 버튼을 눌러 처음 6자리 이후의 숫자 자리까지 표시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사용자는 삼각형 모양인 2배 길이 버튼을 눌러 첫 6자리 이상의 숫자를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디스플레이가 전환되면서 일곱 번째 자리부터의 숫자를 표시했죠.
Hagata: 또 다른 특징은 소수점의 부족이었어요. 그 이전의 모든 계산기에는 소수점이 있었거든요. 소수점을 사용하려면 회로 구성이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그러나 소수점을 제거하면 단일 칩으로 계산기를 만들 수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제작했죠. 하지만 1÷3을 수행할 수 없는 계산기를 진짜 계산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자릿수 확장 버튼을 누를 때마다 소수점 이하 자릿값(예: .33333)을 표시하도록 하여 회로를 단순화하는 방식을 찾아냈습니다.
인터뷰어: 6자리 숫자 제한을 뛰어넘기 위해 자릿수 확장 버튼을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셨나요?
Hagata: 깊이 생각하는 방법밖에 없죠.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는 생각에서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당시에 8자리 계산기는 이미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이미 한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8자리 계산기는 29,800엔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흥미롭거나 색다른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돌파구는 넘어야 할 벽을 인식할 때 찾아옵니다. 상사가 10,000엔짜리 "울트라 계산기"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10,000엔이라면 누구나 살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했어요.
Hagata: 또한 계산기가 배터리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도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8자리 디스플레이는 많은 전력을 사용합니다. 반면 4자리 디스플레이는 계산기에 별로 유용하지 않아요. 6자리 구성을 선택할 때 이러한 장단점의 균형을 함께 고려했죠.
아마 2월쯤, 우리가 그린 도면을 바탕으로 협력 업체에 LSI 제작을 의뢰했을 겁니다. LSI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정말 긴장했어요. 만약 제가 선 하나라도 잘못 그렸다면 모든 것이 망가졌을 테니까요. 당시에는 시뮬레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불안했습니다.
그때 Yukio Kashio(회사를 설립한 4형제 중 막내이자 고문)가 우리를 위한 메커니즘을 만들었습니다. 플레이트 스프링 스위치를 만드는 과정도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Yukio Kashio의 기계적이면서도 저전력 설계를 갖춘 회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인터뷰어: 완성된 Casio Mini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Hagata: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큰 요소는 건전지 구동식이라는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계산기는 전원 케이블이 필요했으므로 사람들이 들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휴대용 계산기라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꼈죠.
계산기가 널리 보급되려면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 생각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건전지를 사용해야 했어요.
건전지만으로도 몇 시간 동안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저전력 설계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한 기술 중 하나는 숫자 "0"을 다른 숫자에 비해 작게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숫자 "0"의 크기를 줄이면 디스플레이를 밝히는 데 사용되는 전력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Hagata: 개발자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자기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당시 TV를 켰다가 우연히 산을 측량하는 사람을 보았는데,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Casio Mini를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계산기를 야외에서 사용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계산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자 이 제품이 분명 잘 팔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한번은 이탈리아로 출장 갔을 때 레스토랑에서 Casio Mini를 꺼냈는데, 사람들이 모두 제 주변으로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모두 저에게 그걸 팔라고 했죠!
그때는 계산기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없었어요. Casio Mini는 진정으로 시대를 바꾼 제품이었고,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렴하기만 한 제품이라면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인터뷰어: 1972년 출시된 Casio Mini는 출시 후 불과 10개월 만에 100만 대를 판매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죠. 이후 Casio Mini 시리즈 계산기는 1,000만 대의 판매량을 기록했고요.
Hagata: 당시에는 한 달에 약 1,000대 정도의 계산기 주문에 익숙했기 때문에, 이 제품을 10만 대나 생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Casio Mini는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환율로는 49.95달러로, 매우 저렴했죠.
당시 계산기 업계는 경쟁이 매우 치열해서 "계산기 전쟁"이라고 불렀고, 다양한 제조사에서 자체 계산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Casio Mini가 이렇게 낮은 가격으로 출시되면서 많은 업체가 시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인터뷰어: Casio Mini 이후 다양한 제품 개발에 참여하셨습니다. 오늘날 Casio Mini의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Hagata: Casio Mini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른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설계했다면 12,800엔짜리 계산기를 만드는 것은 분명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가 우리의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진정한 혁신을 이루었다고 느꼈습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 제품이 크게 히트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가장 훌륭하고 최첨단인 계산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뷰어: Casio Mini를 개발하는 동시에 1972년에 출시된 Casio 최초의 공학용 계산기인 fx-1을 개발하고 계셨는데요.
fx-1(1972)
fx-10(1974)
Hagata: fx-1(1972년 출시)은 Casio 최초의 공학용 계산기입니다. 가격은 325,000엔이었습니다. 학생에게는 너무 비싼 가격이라고 생각해서, 학생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도록 fx-10(1974년 24,800엔으로 출시)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계산기를 공업계 고등학교 학생에게 판매했고, 이를 계기로 Casio 제품을 학교에 공급하는 발판을 마련했어요. 또한 공학용 계산기 외에도 다른 제품을 학교에도 판매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fx-10은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함수를 계산하는 계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이공계 학생들은 아날로그 계산 도구인 계산자를 사용해야 했어요. 당시 공학용 계산기의 가격은 325,000엔에 달했지만, fx-10이 등장하면서 계산기 가격이 단숨에 24,800엔으로 낮아졌죠. fx-10은 업계 전반의 가격 하락을 이끈 주요한 계기로 평가받았습니다.
인터뷰어: Casio Mini 이후 아주 다양한 종류의 계산기가 출시되었어요!
Hagata: 더 작은 계산기를 만들기 위해 다른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먼저 한 회사가 작은 수첩 크기의 계산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앞서 있었죠. 그래서 Casio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신용카드 크기의 계산기를 만들기로 했어요.
우리는 LC-78을 선보였습니다. 출시 연도인 1978년에서 따온 이름이죠. 신용카드 크기의 계산기였습니다. 당시 광고에서는 손 위에 LC-78을 올려놓고 입김만으로 계산기를 회전시키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이후에는 마침내 SL-800을 출시했습니다.
SL-800 (1983)
SL-800: 1983년에 출시된 SL-800은 전자 부품에 필름과 같은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0.8mm에 불과한 두께와 12g의 무게를 실현했고, 신용카드 크기인, 세계에서 가장 얇은 계산기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모델은 일본의 상상력과 기술력의 집약체이자 궁극의 휴대용 계산기로 평가받았습니다.
Hagata: SL-800은 당시 5,900엔으로 비싼 편이라서 아주 잘 팔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Casio는 최고의 계산기 제조업체였으므로, 항상 가장 훌륭하고 최첨단인 계산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제품을 만듭니다. 그것이 Casio의 방식입니다.
Casio Computer는 전산 장치를 만들어야 해요. 당연한 일이죠. 시계를 들여다보면 내부에 전산 장치가 있어요. Casio는 계산기 외에도 시계, 악기, 카메라, 휴대폰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Casio Computer"라는 사명에서, 한때는 "Computer"를 빼고 단순히 "Casio"로 바꾸는 방안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의 중심에는 전산 장치가 있다는 판단 아래, 결국 "Computer"를 이름에 계속 포함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Casio Computer입니다. Casio Computer의 다양한 제품은 모두 전산 기술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Casio의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Hagata: 매일 새로운 제품을 만듭니다.
그것이 Casio의 방식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Casio는 항상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저는 Casio가 미래에도 변함없이 그러한 회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Hagata와 함께한 계산기 60주년 기념 프로젝트 멤버들